[북리뷰]기억이 지운 진실을 찾아서: 찬호께이 《기억나지 않음 형사》 리뷰
작가 : 찬호께이
출판사 : 한즈미디어
출판일 : 2016-03-10
분량 : 312쪽
일본 추리소설계에 히가시노 게이고가 있다면, 홍콩 추리소설계에는 찬호께이가 있다. (그는 홍콩 출신인데, 대만에서 꽤 인기가 많다. )
찬호께이의 작품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의 특유의 촘촘한 이야기 구성과 인물 간의 깊은 인연을 아마도 놓치기 어려울 것이다.
나 역시 《13.67》을 통해 찬호께이의 세계에 빠져들었고, 이후 그의 작품들을 하나하나 찾아 읽고 있다. 이번에 읽은 《기억나지 않음 형사》 역시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원제목은 The Man who sold the World 로 데이빗보위의 곡에서 가져왔다.
이 소설은 기억을 잃은 형사가 자신의 과거와 사건을 추적해 나가는 이야기다. 설정 자체는 익숙할 수도 있지만, 찬호께이의 손을 거치면 전혀 다른 색깔을 띤다.
[줄거리]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를 앓고 있는 형사 쉬유이는 어느 날 차에서 잠이 깨고, 6년 간의 기억이 사라짐을 안다.
6년 전 사건을 취재하는 기자 아찬을 만나면서, 자신의 기억하지 못하는 사건의 결과를 찾아 재조사하기 시작하는데, 기억이 잘못된 것인지, 수사의 결과가 잘못된 것인지 혼란 느끼기 시작한다. 6년 전 실수를 만회하기 위해 그는 진짜 범인을 찾기 시작하는데...
특히 이번 작품은 기존의 찬호께이 작품들과 조금 다른 결을 가지고 있다. 정신분석을 깊이 활용하면서, 정신적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의 특징을 사건 구성에 적극적으로 반영했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인물들의 심리를 세밀하게 파고들어, 단순한 범죄 수사 이상의 긴장감과 무게를 만들어낸다.
그의 소설은 언제나 그렇듯 거침없이 술술 읽히지만, 동시에 곳곳에 촘촘히 깔아둔 복선들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처음엔 무심히 지나쳤던 작은 대사 하나, 주변 인물들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뒤로 갈수록 큰 의미를 띠며 드러난다. 마치 흩어진 퍼즐 조각을 하나씩 주워 모아 범인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또한 찬호께이는 사람들 사이의 인연을 아주 중요하게 다룬다. 그의 세계에는 '우연히 만난 사람'이란 없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에서도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 실로 서로 얽혀 있으며, 그 관계의 층위가 사건의 진실과 긴밀하게 맞닿아 있다.
다만, 아쉬운 점도 있었다. 소설 후반부에 가서는 다소 억지스러운 전개가 느껴졌다. 추리소설이라면 자고로, 독자가 작가가 흩뿌려 놓은 단서들을 따라가며 범인을 추리할 수 있어야 재미가 배가되는데, 이번 작품은 다소 뜬금없는 곳에서 범인이 등장해버려 살짝 실망스러웠다. 모든 복선을 따라가던 기대감이 막판에 어긋나는 느낌이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찬호께이 특유의 빠른 전개와 몰입감은 여전했다. 정신없이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어느새 마지막 장에 도달하게 된다. 단숨에 읽히는 매력이 있는 작품이기에, 추리소설을 좋아하는 분들께 여전히 추천하고 싶다.
요즘 심리학을 공부하면서,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성인기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깊이 생각하게 된다. 《기억나지 않음 형사》를 읽으며, 인간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기억조차 지우거나 변형시킨다는 사실이 새삼 놀랍게 다가왔다. 소설을 덮고 나서는 문득, 나 역시 어떤 기억을 지우고 살아가고 있을까 곰곰이 생각해보게 되었다. 좋은 소설은 사건을 넘어, 독자 스스로를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