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네자와 호노부의 신간이 나왔다. (2024년 5월 기준)
요네자와 호노부는 내가 좋아하는 ‘빙과’라는일본 청소년 소설로 데뷔한 작가이다.
이렇게 말하면 청소년 소설 전문가 같지만. ‘빙과’로 데뷔만 했지 그 뒤로는 보여지지 않는 사회의 뒷 모양을 보여주는 소설들을 쓰고 있다.
[줄거리]
I는 주민들이 모두 떠나버린 지방도시의 외곽마을에 새로운 사람들을 정착시키려는 난하카마시의 프로젝트 이름이다. 주인공은 프로젝트를 맡은 시의 공무원 ‘만간지’
같이 일하는 상사 ‘미시노 과장’은 퇴근 시간만 되면 사라지는 사람이고, 신입직원 ‘간잔’은 요즘 젊은이처럼 거침 없어서 도무지 공무원 같지 않다. 만간지도 이 일에 책임감을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그나마 주어진 일이니 문제 없이 진행하려고 애쓴다.
지원자들의 상황을 속속들이 알고, 너무 나서지도 않고, 방관하지도 않는 적절한 선을 타는 공무원의 모습이다. 때로는 답답하지만 그게 공무원의 모습인듯하다. 만간지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프로젝트의 성공보다는 사고 없이 실패하지 않을 정도로 안정화 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들여다보면 만간지는 매사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
일을 할때도 시의 주요부처에 흩어져 있는 동기 네트워크를 적절히 활용하기도하고, 신입 직원인 ‘간잔’의 업무태도가 맘에 들지 않지만 그렇다고 대놓고 말하며 가르치려드는 꼰대짓도 하지 않는다. 어디서 많이 본 인간상 같다.
만간지의 고군분투에도 특이사항을 가진 입주민들은 하나 둘 다시 도시로 떠나게 된다. 이웃간의 소음문제로 충돌을 빗고 떠나고, 안전문제로 떠나고, 응급차가 오는데도 40분은 족히 걸리는 시골에서 견디지 못하고 떠난다. 결국엔 마을에 미신 문제까지 일어나 주민들이 또 떠난다. 마지막 남은 가정은 사실 아무 문제도 없었지만, 큰 마을에 한 가구만 사는 것에 불편함을 느껴서 떠나게 된다.
겨울을 앞두고, 제설 작업을 위한 예산을 마련하느라 애쓰던 만간지는 허탈함을 느낀다. 프로젝트 종료를 위해 미시노 과장과 간잔과 함께 I시를 둘러보러간 만간지는 지나간 일들을 돌아보다 이게 모두 미시노 과장의 계획이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새로 선출된 시장이 전임 시장과의 차별을 위해 I프로젝트를 강행하자 요새말로 ‘늘공’인 미시노 과장과 부시장은 실익이 없이 시 예산에 부담만 되는 I프로젝트를 안전하게(?) 종료하는 비공식 프로젝트를 세운다.
시장의 면을 세우면서도 예산과 시의 자원을 잡아면는 프로젝트를 조기 종료하기 위해, 농촌이주에 적합하지 않는 사람들을 이주민으로 뽑고, 입주비 지원외에 퇴거비 지원까지 해서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었다. 늘 미숙하다 생각했던 간잔 조차도 비공식 프로젝트를 위해 투입된 직원이었다.
[리뷰]
‘만간지’가 하는 일은 비공식 프로젝트가 누구의 눈에 띄지 않게, I프로젝트가 잘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바람잡이 같은 일이였다. 아무리 일해도 처음부터 성공될리가 없는 일이었다.
원하지 않았지만 주어진 일이라 열심히 했는데, 그것 마저도 눈 속임을 위한 일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만간지는 배신감을 느낀다. 시의 행정은 누구를 위한 것이냐며 농촌으로 이주하려는 사람들을 오히려 쫓아 내다니, 만간지는 미시노 과장에게 화를 내지만, 주어진 자원을 인구가 많은 곳으로 투입해야하는 것이 시의 행정이고 주민들을 위한 선택이라는 미시노 과장의 대답에 아무런 반격을 하지 못한다. 예를 들어 시에 있는 소방차는 더 늘리지 못하는데, 인구 20명 남짓의 I시에 소방차가 출동하게 되면, 시내에 화재가 생겼을 경우, 더 큰 인명 피해가 난다는 논리였다. 작은 시에서 I프로젝트는 시의 자원만 잡아 먹는 블랙홀이 될 가능성이 있기에 사전에 제거한다는 것이다.
일본의 사회소설을 즐겨읽는 이유는, 절망감과 긴장감 때문이다. 일본 사회는 우리보다 10년 먼저 각종 사회 문제를 겪는다. 거품경제, 왕따문제, 줄어드는 노동인력의 문제, 노령화 등 말이다.
우리나라도 상황이 비슷하다. 특히나 모든 것이 수도권에 집중된 형태이다. 인구, 경제, 학교, 모두가 서울로 모여들고 반면 지방 도시들은 줄어들고 있다. 지방 도시에 4년 정도 살아봤는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도시임에도 불구하고 서울과는 갭이 크다. 그 도시에서 한 시간 내에 있는 외곽 도시들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지방 도시들은 인구 증가를 위해 안간힘을 쓴다. 각종 지역 축제가 만들어지고, 1년 살기 프로젝트들이 많이 만들어졌다. 체험 프로젝트에서는 주거, 이사비용 등 많은 것을 지원하지만 프로젝트 끝나고 농촌으로 이주하는 가정은 못 봤다. 그렇다고 두 손을 놓고 있을 순 없다는 생각에 동의 한다.
미시노 과장을 보면, 늘공(늘 공무원인 사람) 중에 에이스이다. 실제로 미시노 과장의 캐릭터를 소개하는 글에는 여우 중에 여우라고 나와 있다. 늘 퇴근 시간만 되면 사라진다 했지만, 그는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사람이다. 늘공으로서 선출된 기관장 또는 시장의 말을 거부하긴 힘들다. 그러나 시장은 계속 바뀌므로 지금 시장이 하는 일이 다음 시장에게 부담이 되어서는 안 된다. 미시노 과장은 그 선을 잘 그으면서 일하는 사람이다. 아마 대다수의 늘공 들이 그럴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공무원들이 게으르고 멍청하다고 생각하는데, 천만의 말씀이다. 그런 사람들도 있지만, 나는 매우 똑똑하면서 성실하고 책임감 있게 일하는 사람들도 꽤 많이 봤다. 행정 수반이 5년마다 바뀌기 때문에 리스크를 최소화 하면서 그에 맞춰서 일하는 것일 뿐이다.
한 때 공공업무를 했기에,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어떤 마음으로 일을 했는지 문득 문득 책을 덮고 생각했다. 잘 했다 생각하는 일들도 있지만 부끄러운 마인드를 가지고 했던 일들도 있다. 일의 성패는 ‘무사고’라는 생각이 강했다. 일을 더 잘 하려는 노력보다는 사고 없이 진행하는데 초점을 맞춘 날들도 있었다.
내게 다시 기회가 주어진다 해도 자세를 확 바꿀 수 있다고 말은 못하겠다. 내가 하는 일에 각종 책임이 따르고, 고객들은 화가 나면 전화를 해서 평생 들을 욕을 한 번에 하니까… 그런 기분은 누구나 겪지 않는게 최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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