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사후알게되는것3 포스기 위에서 방황하는 내 손이 부끄럽구나 언제나 듣는 말은 '네가 카페 하면 잘 어울릴 것 같다', '네 인상이 카페 사장이다', '네 얼굴이 매력적이라 사람들이 좋아할 거다.'였다. 나 스스로도 '나쁜 인상은 아니잖아. 언제든 맘만 먹으면 맘에 드는 분위기의 카페 하나 차리지'였다. 바쁘게 주문받는 카페 종업원들을 보면서 요즘 아이들은 무표정이 디폴트 값인가 보다. 좀 더 웃고 눈 마주치면서 주문받으면 사람들이 따뜻함을 느낄 텐데라고 뭣도 모르는 생각을 했었다. 나는 카페업의 꽃은 포스라고 생각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모두 그렇게 생각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샐러리맨들 말이다. 지난 연말 우연히 오피스 상권의 카페에서 주문받는 아르바이트를 할 기회가 생겼다. 이건 정말 기회다. 3일의 교육의 거쳐 매일 2시간씩 2주간 일했다. 어떤 카페 사장.. 2024. 4. 5. 나에게 진짜 퇴사는 블라인드와의 이별 퇴사를 해도 블라인드를 놓기가 망설여졌다. (블라인드는 친절하게도 퇴사자를 밀어내지 않는다. ) 왜일까? 이직이 아니기에, 회사에 대한 애정과 애증이 그대로 있었다. 블라인드란 보통 갈등의 이야기들이 올라오는 곳이다. 나는 그들의 갈등을 보며 즐기기를 원했던 걸까? 맞다. 그곳의 무궁한 발전보다는 내가 없으니 좀 소란스럽고 껄끄럽게 운영되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퇴사하고 한 동안은 종종 들어가며 불미스러운 일은 없는지, 갈등은 없는지, 누가 잘못한 일은 있는지 나도 모르게 체크했다. '아, 이렇게 마음에서 밀어내지를 못하는구나' 라고 생각했는데 달리기를 하고 전시회를 다니며, 친구들을 만나는 삶을 살다 보니 어느 날 문득 블라인드를 잊고 있었다. 즉, 회사를 잊고 있었다. 더 이상 주간회의 부서회의, 전.. 2024. 3. 26. 그날은 매우 화가 났고, 나는 행복해지고 싶었다. 23년 1월 정기인사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본사가 있는 타지로 내려와 기러기 생활을 한 지 3년 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동안 회사에서 내 역할을 충실하게 했고, ( 운과 실력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맡은 업무의 실적이 3년 연속 매우 좋았다) 본사에서 근무를 3년 했으니 이동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이번 인사를 앞두고서는 그간 아껴두었던 인사 고충도 상담했다. 나의 인사 고충은 건강과 가족이었다. 일주일에 2번에서 많게는 5~6번 타는 KTX는 내 몸을 축나게 했다. 그리고, 혼자 사는 불규칙한 삶은 체중을 늘렸으며, 이에 따라 나는 너무 이른 갱년기가 왔다. 혼자 있는 방 하나짜리 오피스텔에서 나는 종종 울었고, 타지살이의 서러움을 느꼈다. 더는 혼자 있을 수가 .. 2024. 2. 27. 이전 1 다음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