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에 큰아이를 낳고, 2023년에 퇴사를 하기까지 16년을 워킹맘으로 살았다.
16년 동안 2번의 출산 휴가와 1번의 육아 휴직을 사용했었다.
기간은 총 40개월 남짓이다.
7개월 남짓 된 큰아이를 두고, 출근하던 첫날이 지금도 생각난다.
급히 구한 이모님께 아이를 맡기고 출근하려 할 때, 큰아이는 무슨 상황인지 몰라 멀뚱멀뚱했고, 나는 현관문을 뒤로 하고 흐르는 눈물을 닦았다.
왜 눈물이 났을까? 낯선 이와 혼자 있을 아이 걱정이었을까? 앞으로 워킹맘으로 살아갈 내 앞길이 걱정이었을까? 아마 두 가지 감정이 섞여 있었겠지만, 아이 얼굴이 더 생각나는 걸 보니 아이 걱정이 조금은 더 많았던 것 같다.
입 짧은 큰아이는 당시 이유식을 시작했는데 입에 넣는 대로 밀어냈다.
출근 전 하루는 아이를 앞에 두고 울면서 말했다.
‘호야 잘 먹어야 해. 이제 엄마처럼 널 기다려주는 사람은 없어’
그 말 때문인지 아이는 그 뒤로 엄마 없는 상황에서 항상 무덤덤하게 ‘난 괜찮아. 난 상관없어’라는 말을 곧잘 했다.
나는 아쉬운 소리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 않았다.
나는 워킹맘으로 사는 기간 이모님 신세를 졌다.
종일 아이 돌보기는 자신이 없다는 시어머니, 언니 아이들 돌보는 우리 엄마에게 부담을 주고 싶지 않았다는 대외적인 명분이고, 사실 나는 누군가에게 아쉬운 소리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워킹맘 선배들을 보니 아이 돌봐 주는 그 누군가에게 항상 ‘을’이었다. 돈을 주면서 맡기면 그 ‘을’의 입장에서 좀 더 목소리를 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었다.
그때는 몰랐던 감사한 것들, 그 분들 덕분에 일 할 수 있었다
16년 동안 아이 돌보는 이모님은 총 2분이었다. 지나고 나서 생각해 보니 두 분과 오래 함께 지낸 것은 행운이다.
특히나 두 이모님 모두 아이들에게는 할머니처럼 대해 주셨고, 나에게는 친정엄마처럼 해 주셨다. 이모님들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지쳐 돌아온 나를 돌보셨다. 살림까지 맡아 주셨다.
계절의 변화에 따라 알아서 옷장 정리를 해 주시고, 금요일이면 주말에 먹을 것들을 만들어 주고 가셨다. 둘째 아이는 아프게 태어나서 병원 갈 일이 많았는데, 그때마다 나 대신 아이를 둘러업고 가셨다. 아이 둘이 건강하고 예의 바른 사람으로 큰 것은 이모님들 덕이 크다.
그러나, 당시에 나는 뭐가 뒤틀렸는지 가끔은 이모님께 드리는 월급이 아깝기도 하고, 특히나, 이모님 퇴근 시간을 지키기 위해서 아등바등해야 할 때 짜증이 났다. 남편은 이모님 퇴근 시간을 엄격하게 지켰는데, 왜 저렇게까지 하나 생각했다. 내 퇴근 시간이 중요한 만큼 이모님 퇴근 시간도 중요한 것을 왜 그때는 몰랐을까? 인간적으로 좀 어렸던 시절이다.
나중에 집에서 살림하게 되면서, 그동안 얼마나 편히 살았는지를 알았다.
원래 이모님이란 분은 아이들만 돌보고, 굳지 업무는 알아서 하시지 않는다.
그동안 나는 천사들을 만났다. 지금도 명절 때마다 아이들과 함께 이모님을 찾아뵌다.
엄마의 부재가 익숙한 워킹맘의 아이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입학할 때, 처음이자 마지막 육아휴직을 사용했다.
첫 아이 초등학교 입학 때는 새로운 부서로 이동했기 때문에 육아 휴직 사용할 엄두를 못 냈다. 오전 반차 내가며 일주일은 아이가 학교에 적응하도록 등교를 같이했는데, 나는 열심히 했으나 아이에게도 회사에도 좋은 소리는 못 들었다. 미련한 행동이었다.
둘째 아이는 마지막이니 꼭 육아 휴직을 써야지 다짐했다기보다는 지방 근무를 피하기 위해 육아 휴직을 냈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육아 휴직을 아이들이 좋아할 줄 알았다.
당시 큰아이는 초등학교 4학년이 되는 시점이었다. 엄마가 앞으로 집에 있단다. 좋지? 라고, ‘난 괜찮은데, 이모님이 있어도 괜찮아.’라며 시큰둥했다.
아이의 대답 속에서 엄마가 왜 휴직해서 집에 있느냐는 질문이 느껴졌다. 나는 섭섭했다.
나의 일도 잠깐 멈추고 너희들을 보러 엄마가 집으로 오는 건데, 이 정도면 환영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엄마 너무 좋아~!’라고 야단법석을 떨어야 하는 거 아닌가?
섭섭한 마음으로 시작한 육아 휴직은 우리 아이들에 대한 이해를 높였다.
아이들 방과 후, 집 근처 전시회도 가고, 맛집도 찾아다니기 위해 시작하니 큰아이 입에서
‘엄마가 있으니 좋다. 학교 다녀오면 집에만 있었는데 여기저기 다니는 거 재미있네!’라는 말이 나왔다.
우리 아이는 평일에 엄마가 집에 있는 삶이 어떤 것인지 몰랐다. 나도 엄마가 늘 일하셨기에 그게 어떤 것인지 몰랐다.
- 계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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