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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워킹맘에서 워킹 떼고 맘으로 2

by 숲속의여사님 2024. 3. 18.

아이들이 유치원 다닐 때부터 들은 말이 있다. 

'애들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살만하니 조금만 더 버텨라'

 

하루 종일 일하고 종종걸음으로 퇴근하고 나면, 엄마의 도어록 누르는 소리에 아이들은 벌써 현관 앞에 서 있는다. 

저녁 육아는 신발도 제대로 벗기도 전에 안기는 아이들에게 몸을 휘청 거릴 때부터 시작되었다. 

퇴근이 7시이던, 8시이던 

나는 아이들에게 오늘의 취침 시간을 알려줬다. 

'9시에 잘 거니까. 우리 그 전에 화장실도 다녀오고, 치카치카도 해야 해!' 

초저녁 놀이터에는 엄마와 산책 나온 동네 아이들이 많았는데 우리 집에서 꿈도 꾸지 못했다. 

산책 다녀오면, 아이들 다시 씻겨야 하고, 흥분해 있으니 빨리 잠들지 못할 거라는 생각에 저녁 산책은 꿈도 꾸지 못했다. 

큰 매트에 셋이 누워 조근 조근 책을 읽으며 잠이 든 지도 모른 채 잠든 날이 하루 이틀이 아니다. 

 

초등학교 갈때까지만 버텨보자 했지만, 먹이고 씻기고 재우는 고민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다른 고민으로 변했다. 

'보육'과 '교육'의 차이라는 것을 인식하였다.   

 

먹이고 씻기고 돌보고 재우는 보육은 남의 손을 빌려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라 했다. 

아니 유아기 엄마 사랑은 다른 것으로 대체될 수 없다며 워킹맘들의 마음을 작아지게 만든 게 엊그제 같은데 남의 손을 빌리리 수 있는 일이라니 배신감이 들었다. 

 

초등학교 들어가니 교육에 신경을 써야하는데, 이 교육이라는 것은 이모님 손을 빌려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란다. 

첫 아이 입학을 앞두고 마음이 불안했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다. 나는 모른 척했다. 대신 입학 준비를 철저히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입학 준비란, 이름을 새겨주는 가방을 남들보다 발빠르게 준비하는 게 다였다. 

내가 할  수 있는 입학 준비는 사무실에 앉아 컴퓨터로 할 수 있는 쇼핑이 다였다. 

 

정신없는 초등학교 학부모 노릇을 할 때에는 모두들 나에게 

'아이들이 중학교만 가면 괜찮다 '했다. 중학교 가면 부모보다는 부모의 카드가 필요하고, 학원 가느라 아이들이 집에 있을 시간이 없다고 하며 조금만 더 참아보라 했다. 

그렇게 큰 아이 6년, 작은 아이 플러스 3년으로 9년의 초등학교 기간을 무사히 마치고 나니 나는 또 다른 배신을 맞았다. 

 

'엄마의 정보력'이 아이의 대학을 만든다. 

고입을 치르면서 보니  입시 설명회는 대부분 낮에 이루어진다. 일하는 엄마, 특히 나같은 지방에서 일하는 엄마는 참석이 불가하다. 

그렇다고 내 성격에 정보를 얻을 전업맘 엄마를 친구로 두지도 못했다.  고입을 앞두고 아이가 원하는 학교의 설명회를 모두 놓치기도 했다. 

나는 또 다시 작아졌다. 다른 워킹맘들은 어떻게 하고 있나?

대부분의 워킹맘들은 웃으며 말한다. '우리 애는 공부에 관심이 없어서..., '우리 애들은 공부를 놨어.' 

우리 나이때까지 회사에서 자리 지키며 일하는 워킹맘들은 그야말로 능력자들이다.

좋은 대학을 나왔거나, 업무 실력이 매우 좋거나, 인간관계 관리에 특출하거나... 그런 그녀들이 자식들의 성적을 이야기할 때 왜 속이  타지 않겠는가? 아이들에게 미안한 마음만 계속 쌓여간다. 

 

엄마가 필요하지 않다던 말은 누구의 말이지? 

육아로 인한 육체적 노동이 줄었을 뿐, 아이들에게 들어가는 정신적 노력과 스트레스는 점점 커져갔다. 

 

결국 앞에서 말한 여러가지 이유로 내 타이틀 '워킹맘'에서 '워킹'을 떼었다. 

 

제일 먼저 한 일은 

고등학교 들어간 아이에게 아침을 차려주는 것이었다.  지난 4년간 아빠가 간단히 차려 놓고 간 아침밥을 스스로 데워 먹으며 조용한 아침을 보냈던 아이들에게 따뜻한 밥을 주고 싶었다.

아침밥을 먹으며 큰 아이는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때로는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 때로는 수행 평가 발표 연습,  때로는 선생님 흉보기 등

나는 우리 아이가 이렇게 수다스러운지 몰랐다. 

이렇게 말이 많은 아이였나?  CCTV로 지켜본 아이들의 아침 식사 시간은 정말 조용했는데, 말할 상대가 없어서 그랬구나 

나는 많이 들어주기로 했다. 맞은 편에 앉아 맞장구쳐 주기로 했다. 

급히 나가는 아이 현관문 열어주며 엘리베이터 잡아 주기로 했다. 

눈을 마주치며 오늘 하루 잘 다녀오라고 때로는 사랑한다고 말하여주기로 했다. 

 

얼마 전 후배가 찾아와 지금까지 쌓아온 게 아깝지 않았냐는 질문을 했다. 

나라고 왜 아깝지 않았겠는가? 내 일은 멋지고 소중한 일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의 희생을 강요할 일은 아니었다는 생각이 든다. 

일을 할 수 있는 상황이면 끝까지 일을 하는게 맞다. 

그러나 지금의 나는 잠시 '워킹'을 중지한다. 아이들이 조금만 더 클 때까지 '맘' 역할을 하며, 잘 듣고, 잘 안아주며, 잘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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