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년 1월 정기인사 발령을 기다리고 있었다.
서울에 가족을 두고 본사가 있는 타지로 내려와 기러기 생활을 한 지 3년 6개월이 넘어가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동안 회사에서 내 역할을 충실하게 했고, ( 운과 실력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했기에 맡은 업무의 실적이 3년 연속 매우 좋았다) 본사에서 근무를 3년 했으니 이동 대상이 되기도 했고, 이번 인사를 앞두고서는 그간 아껴두었던 인사 고충도 상담했다.
나의 인사 고충은 건강과 가족이었다.
일주일에 2번에서 많게는 5~6번 타는 KTX는 내 몸을 축나게 했다. 그리고, 혼자 사는 불규칙한 삶은 체중을 늘렸으며, 이에 따라 나는 너무 이른 갱년기가 왔다.
혼자 있는 방 하나짜리 오피스텔에서 나는 종종 울었고, 타지살이의 서러움을 느꼈다. 더는 혼자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타지에서 일하는 동안 남편은 일 년의 육아휴직으로 아이들을 돌보고, 복직 후에도 이른 새벽에 아침을 준비하고 가는 등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어느 날 본 남편의 얼굴은 탈진 된 상태였다. 큰아이와 작은 아이는 고등과 중등 입학을 앞두고 삶의 큰 변화를 맞을 준비 중이었다.
이런 상황이었기에 가족과 23년에는 가족과 함께 지내고 싶었다.
내 뜻을 간절히 담아 인사부장에게 고충 상담을 마무리한 상황이었다.
이번엔 꼭 이동할 수 있을 거 같았다.
모두 서울로 잘 가시라 인사를 했고, 나는 마음속으로 이사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서울로 오는 KTX 안에서 본 인사 발령문에는 아무리 봐도 내 이름이 없었다.
실망과 배신감에 눈물 났다. 달리는 기차 안에서 소리 내지 않으려 입술에 힘을 꼭 주고 눈물만 흘렸다.
회사엔 실망과 배신감에 화가 나는 순간이었다.
가족에겐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드는 시간이었다.
서울에 도착한 후, 마음을 추슬렀다.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고민이 되었다.
가족들에게 이 생활을 더 하자고 말하려니 미안한 마음에 집에 들어오기가 머뭇거려졌다.
현관 앞에서 크게 숨을 고르고, 미소 지으며 집으로 들어왔다
마음을 다잡고 웃으며 들어왔지만, 반겨주는 아이들 얼굴을 보자 참았던 눈물이 터졌다.
둘째 아이가 위로의 말을 건넸다.
‘엄마 회사 그만둬.'
‘행복해지려고 일하는 거라고 생각하는데, 요즘 엄마가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아. ‘
그 말을 듣는 순간 머릿속이 맑아졌다.
그래 나는 행복해지고 싶다.
행복해져야겠다.
나는 퇴사를 결심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아이의 말 한마디에 중요한 의사결정을 한 것 같지만, 그때 나는 지쳐있었고, 행복하지 않은 것 같았다. 회사에선 집이 그리웠고, 집에서는 월요일 새벽 기차를 타고 출근할 생각에. 주일 저녁부터 우울했다.
나에게 행복해지라는 아이의 말은 너무나 필요한 일을 알려주는 것이었다.
마음이 가벼워지고, 퇴사를 위해 할 일들이 뚜렷해졌다.
월요일이 기다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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