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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

나의 퇴사는 그들에게 어떤 의미인가?

by 숲속의여사님 2024. 2. 28.

퇴사 결정을 하고, 사실을 주변에 알렸다. 

부모님과 형제들에게 알리고, 회사에 돌아가 직속 상사이자 선배인 L 부장님께, 절친에게, 절차에 따라 인사팀장, 인사부장에게 말했다. 

 

부모님

회사에 다니면서부터 부모님이 생활비로 쓰실 용돈을 드리고 있기 때문에 마음에 걸렸다. 회사를 그만두고 수입이 없는데 어떻게 하지? 딸만 있는 부모님은 자식들이 번듯한 회사 다니고, 사업하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셨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웬일인지 나의 결정을 응원해 주셨다. ‘네가 너무 힘들겠다. 어서 몸을 추슬러라 말씀하셨다. 하지만 뒤로 용돈을 거절하진 않으셨다. 

 

형제들

언니는 퇴사 그만두지 것을 강조했다. 특히나 아이들이 고등학생이 되는 시점에서 홑벌이는 힘들다고 했다. 그러나 어쩐 일인지 이번엔 언니가 어서 오라고 응원해 줬다. 무엇보다 건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동생은 언제나 나의 서울행을 요청했었기에 크게 환영했다.  

가족들의 응원을 얻으니 났다. 그러나 평상시에 그리 반대하던 분들이 웬일인가 싶었다. 

이유는 나중에 깨달았다. 퇴사 가까이 지났을 , 퇴사 직전의 사진을 보니이게 모습인가싶은 깜짝 놀라고 속상했다. 퉁퉁 부은 얼굴, 무너져 내리는 몸의 라인들, 늘어진 턱살. 그때는 몰랐는데 내가 이런 모습이었구나. 다들 찬성한 이유가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회사 

선배

십 년 동안 알고 지낸 선배이 자네 직속상사는 서울 발령을 하지 않나  실망했을 나에게 위로의 말을 건넸다. 차 한잔 하며 이야기하자 했는데, 나의 뜻밖에 결정에 나를 설득할 있는 이유를 생각했지만, 어떤 이유로도 나를 설득할 없다고 했다. ‘너를 설득하고 싶은데, 네가 회사 밖으로 나가서 너무 같아서, 너를 붙잡을 수가 없네. 어떡하지?’ ,’그래도 번만 다시 생각했으면 좋겠다.’라며 눈물을 흘리는 선배를 보니 가슴이 아팠다. 

 

인사부 

있으니 만나자는 얘기에 인사부장은 오전 내내 인사 발령 불만자들의 항의에 시달렸는지 이번 인사 관련 얘기냐 묻고, 그렇다 했더니 그럼 오후에 오라고 시큰둥하게 말했다. 

나는 중요한 이야기를 하려는데 이렇게 나온단 말이지다시 한번 실망했다. 

양반아 건이 오늘 당신에게 떨어질 제일 폭탄이야. 잠시 기다려라.’라고  혼잣말을 했다. 

 

친구

사이 회사 10 절친에게 상황과 결정을 이야기했다. 

안돼라는 그녀의 대답. 눈물만 흘리고 본인 자리로 가버렸다. 

차이인 그녀와 나는 지금 회사 들어오기 , 서로의 직장부터 알던 사이였다. 전화기 쾌활한 목소리의 그녀는 우리 팀에서 모두가 궁금해하는 은행의 K였다. 새롭게 시작하는 회사에서 다시 만난 우리는 지난 십 년 동안 산전수전을 같이 겪은 사이다. 일하며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 키우며, 서로 비슷하게 승진하며 일의 고민도 이야기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그녀는 퇴사 결정을 받아들이지 못했다. 같은 층에서 일했던 그녀는 눈만 마주치면 울음을 터트렸다. 그래서 얼굴을 보지 않고, 사내 메신저로 대화했다. 

그녀는 나의 서울행 이후, 한동안 우울했다고 한다. 

 

다시 인사

인사부장은 결정을 듣고 의자에 기대었던 느슨한 자세를 바로잡으며 깜짝 놀랐다. 다시 생각해 보라 했지만, 이틀 내가 결정을 번복하지 않았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본인의 상사 누구와도 상의하지 않았고, 이에 따라 이후의 일들을 복잡하게 만들었다. 회사와 협상을 할 생각 없었지만 내게 다른 얘기를 주었다면 어땠을까 싶다. 며칠 , 이번 일로 임원진에게 엄청나게 깨진 그는 결정 번복을 요청했고, 퇴사일을 지연해 줬으면 좋겠다며 곤란해했다. 

 

엄청나게 깨진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조직에 여성 관리자가 많지 않은데, 그중 명이 그만둔다고 하니 모두 당혹스러워했다. 관리자를 기르는 데는 시간이 많이 든다. 나는 나쁘지 않은 관리자였다. 

 

그리고 임원들 

그들이 퇴사 결정을 아는 데는 며칠의 시간이 걸렸다. 루트, 루트를 통해서 알게 그들은 일단은 나의 퇴사를 반대했다. 반대의 이유는 나를 생각해 주는 같았지만, 자세히 보면 모두 일이 자기에게 미칠 영향을 걱정했다. 임원들은 원래 걱정이 많은 사람들이다. 

새로 얼마 기관장은 본인이 얼마 되었는데, 여성 관리자가 그만두는 사람들이 좋게 보면 어쩌냐며 나를 이리저리 불러가며 반대했다. 

기관장보다 먼저 이사는 본인이 쓰기 편한 직원이 그만둔다니 반대했다. 

그러나 그는 부임 첫날 가족들 두고 내려와 있다는 나에게 회사 그만두라 했다. 농담처럼 말했지만, 애들 놔두고 여기서 하냐는 뉘앙스가 느껴졌다. 당신 말대로 아이들 돌보러 갑니다. 

 

그들이 여러 가지 제안을 했지만, 그걸 받아들이기에 나는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 마음을 정했다. 그리고 동료들과 퇴사 기념 환송 파티를 한창 하고 있었다. 

퇴사를 결정한 사람들에게 가지 하고 싶은 조언이 있다면, 이미 결정했다면 내 개인적인 이야기를 그들에게 개업할 필요는 없다. 이제 와서 되돌아보면, 설득과 설득의 시간이었던 며칠 동안 나는 상황을 설명하느라 개인적인 이야기를 너무 많이 같다. 다시 그들에게 그럴 필요는 없었다. 

 

동료들

나는 남은 동안 내내 사람들과 휴식 시간을 하거나 식사를 같이했다. 

어떤 날은 하루에 7잔의 차를 마시기도 했다. 인사할 사람은 사람은 많고, 많고, 시간은 부족했다. 이별이 결정되는 사람, 사람 아쉬웠다. 직장인이란 모두퇴사 이후의 꿈꾸기 때문에 기본적으로는 부럽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사이에 나는 그들의 따뜻한 마음을 느꼈다. (몇몇은 제외하고 싶지만) 앞으로의 나의 계획을 물어보는 사람들. 대부분 본인이 하고 싶은 것들을 나에게 추천했다. 공부방이나, 독서 선생님, 카페 창업 . 앞으로의 생활을 걱정해 주는 사람들도 있었다. ‘서울에 집은 있냐?’, ‘대출은 어떻게 갚을 계획이냐?’, ‘운동은 앱을 쓰면 좋다.’ . 모르는 후배들의 작은 쪽지. 휴식 시간.

회사 생활을 허투루 하진 않았구나.’라며 스스로 위로했다. 

 

여자들

회사 후배 중에는 나처럼 아이들을 두고 본사로 내려온 여직원들이 된다. 

4 내가 복직했을 , 그들에겐 어떤 희망이 생겼다고 했다. ‘ 그녀가 회사를 떠나지 않았다. 아이들을 두고 지방으로 내려왔다. 우리도 있겠구나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4 사이 많은 직원이 육아휴직 , 복직을 했다. 아이를 데려온 사람도 있고, 혼자 내려온 사람도 있었다. 모두 기러기였다. 그녀들에게 나의 퇴사 결정은 남의 일이 아니었다. 그녀들도 결정해야만 하는 순간이 것이라는 생각에 심란한 시간을 보냈다고 한다. 

 

내가 그만두었다고 자기들도 그럴 거라고 단정 짓지 말기를 바란다. 

모두 삶의 우선순위가 있고, 상황이라는 있다. 나는 상황에서 나에게 맞는 우선순위대로 결정했을 뿐이다. 당신들에게 당신들의 상황이 있고, 우선순위가 있다. 

 

다시 생각해 보면. 

결정보다는 과정이 요란했었다. 그러나 이번 퇴사는 회사를 떠나기만 하는 아니라, 나의 직장 생활을 일단락하는 일이었기에 요란한 파티와 감정의 폭발과 끈질긴 설득 과정은 나에게 필요했다. 덕분에 나는 이별을 마무리하고, 그곳에서 나의 존재감을 인식하며 마무리할 있었다. 

 

회사는 싫었지만, 사람들은 좋았던 그곳이다. 

 

나의 결정으로 힘들었던 사람들에게 위로의 말을 전한다. 그러나 사과하고 싶진 않다. 내 결정에는 당신의 결정이 영향을 주었으므로 잊지 않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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