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 소설 『위저드 베이커리』로 유명한 작가 구병모가 이번엔 킬러 이야기를 들고 나왔습니다. 제목은 『파과』.
이 단어엔 두 가지 뜻이 있어요.
• 하나는 ‘16세 전후’라는 시기적 의미,
• 또 하나는 ‘상한 과일’이라는 의미.
저는 이 소설을 읽으며 후자의 뜻이 더 마음에 와닿았습니다.
모두가 한때 탐했지만, 이제는 아무도 돌아보지 않는 삶. 버려진 것.
🎭 『파과』가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소설이 뮤지컬로 만들어지더니, 마침내 영화화까지 되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늙은 킬러 역할을 할 수 있을까?” 궁금했는데, 배우 이혜영님이 그 어려운 일을 해냈습니다.
처음엔 ‘이혜영 = 불륜녀, 부잣집 사모님’ 이미지가 떠올랐지만, 영화 속 ‘조각’이라는 인물을 맡은 그녀를 보며 진짜 배우라는 게 어떤 건지 느꼈습니다.
역할의 이미지에 갇히지 않고, 새로운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 그 자체로 아름다웠습니다.
📖 다시 읽은 『파과』, 이유가 있었죠
영화 개봉을 기념해서 다시 책을 꺼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리커버판이 나왔기 때문만은 아니에요.
『파과』를 처음 읽었을 때의 그 신선함, 다시 느껴보고 싶었습니다.
• 노년의 여성 킬러라는 파격적인 설정,
• ‘조각’이라는 이름만 보고 남성이라고 생각했다가 놀랐던 기억.
• 그리고 조각과 투우, 류 사이의 관계가 주는 긴장감.
이 모든 요소가 저를 다시 이 책으로 끌어들였습니다.
🧓 나이듦을 겪는 킬러 ‘조각’
처음엔 조각과 투우의 대결, 그리고 류와의 관계에 집중했어요.
그런데 두 번째 읽을 땐 조금 다르게 다가왔습니다.
조각은 점점 킬러로서의 능력을 잃어갑니다.
민첩함, 근력, 자신감, 시력까지.
실수를 하게 되고, 그 실수를 누가 알까 봐 전전긍긍합니다.
하나씩 무장 해제되는 느낌.
반면, 투우는 이제 막 떠오르는 태양처럼 뜨겁고 자신감 넘칩니다.
하지만 그런 그도 결국, 조각에게 계속 시비를 걸며 관심을 구걸하는 모습은 마치 “나 좀 봐줘요”라고 외치는 아이처럼 보입니다.
💔 엇갈린 사랑, 묶여버린 시간
조각은 마음을 줬지만 가질 수 없던 남자를 사랑했고,
투우는 엄마보다 조각에게 더 큰 정을 느꼈습니다.
함께한 시간은 정말 짧았지만, 그 짧은 순간 안에서 두 사람은 평생을 갇힌 채 살아갑니다.
결국 투우는 용병까지 준비해 조각에게 결투를 신청하고,
조각은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면서도 그 결투를 받아들입니다.
죽어가는 투우에게 조각은 말하죠.
“이제 알약 먹을 줄 아니?”
이 한마디가 투우에게는 진심 어린 위로였을지도 모릅니다.
🚇 지하철에서 마주친 현실의 조각들
소설 첫 장면이 아직도 생생합니다.
지하철에서 청부살인을 조용히 해치우고 사라지는 조각.
그 옆에선 노인이 젊은이들에게 자리 양보 문제로 일장 연설을 하고 있죠.
이 장면, 낯설지 않죠.
저도 최근에 비슷한 광경을 봤어요.
지하철에서 베낭을 멘 할머니가 20대 여성들에게
“그래서 잘 했다는 거야?”라며 호통을 치는 모습.
“아까 물어보셨을 땐 아니라고 하셨잖아요?”라는 대꾸에
“금방 내릴 줄 알았지! 그래서 잘 했다는 거야?”
이 장면에서 느껴진 건 단순한 싸움이 아니라,
존중받고 싶다는 외침이었습니다.
🕰️ 나이듦의 무력함과 슬픔
기억이 흐릿해지고, 무릎이 아프고, 몸이 무거워지는 현실.
구병모 작가는 조각이라는 인물을 통해 늙어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무기력해지는지를 세밀하게 보여줍니다.
예전에는 “나이 들면 다 그런 거지”라고 생각했지만,
이제는 그 안에 담긴 서러움과 슬픔을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 아무도 탐하지 않는 ‘파과’, 그러나…
버려진 과일처럼,
더 이상 누구도 탐하지 않는 삶처럼 보이지만,
그 파과는 결국 조용히 땅에 묻혀,
새로운 생명을 위한 영양분이 됩니다.
그것이 『파과』가 전하는 묵직한 메시지이자,
조각이라는 인물을 통해 말하고 싶었던 삶의 마지막 위엄일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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