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영화평론가 이동진 님은 3권을 책을 올해의 책으로 선정했다. (소설 제외. 소설은 따로 3권을 뽑았음)
그중 하나가 이 책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패트릭 브링리 지음, 웅진지식하우스)이다.
세련된 표지의 많은 책들 중에서 이 책은 갱지 느낌의 표지로 투박했다.
쨍한 느낌의 컬러도 아니고, 무채색 느낌의 표지에 코팅되지 않은 종이로 몇 번 들고 외출했더니 표지가 닳아지는 게 서운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표지는 표지일 뿐, 내용은 나에게 너무나 필요한 내용이다.
책과의 만남에도 타이밍이 있다.
퇴사 일 년을 맞이하는 그때 나와 이 책의 만남은 필연이었다.
다음과 같은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현재 일에서 매너리즘을 느끼는 사람
일하는 이유를 잘 모르겠는 사람
희망도 미래도 안 보이게 슬픈 사람
미켈란젤로를 좋아하는 사람
내용은 '뉴요커'의 기자로 잘 나가던 지은이가 형의 죽음으로 실의에 빠지고 대도시의 가장 눈에 띄는 곳에서 대도시의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는 매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이직을 하고 몇 백 년에 걸친 미술관의 작품들과 함께 일하는 과정에서 본인의 생각과 느낌을 에세이로 담아냈다.
형의 죽음을 기점으로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
작가는 이름만 대면 누구나 아는 회사, 명함을 주고 별 다른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회사에 들어간 후,
그곳에 자신이 주무를 수 있는 곳이 아니라, 그곳이 저명한 틀이 되어 자신을 끼워 맞춰야 했다고 한다.
그렇지 회사라는 곳은 '틀'이었지. 틀에 내가 맞지 않는다면 나를 조금은 깎아내서 맞춰야 하는 곳이지라는 생각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안정된 회사일수록 작가가 말한 대로 실패에서 교훈을 얻기보다 최면 같은 합리화의 안락함 속으로 후퇴한다.
스스로가 아닌 목소리를 사용했다는데 왜 이리 공감이 되는 건지 모르겠다.
읽다가 내 모습을 틀긴 것 같아 누가 알까 봐 혼자 깜짝 놀란 부분이 있다.
동료들과 나는 일주일, 40시간 내내 할 일이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현대사회의 사무실 관습에 따라 그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퇴사 일 년 전부터 나는 내가 자리를 지키고 있다는 생각이 종종 들었다.
우리의 일이 40시간 팽팽 돌아가는 일은 아닌데 모두들 바쁜척하고 있다.
관습에 따라 책상에서 책을 펼 수도, 머리를 식히는 산책을 할 수도 없었다. 나는 모두가 그러듯 인터넷을 뒤적이고 책을 읽지 않는 법을 배우면서 시간을 허비했다.
이건 내 모습이었잖아. 책상에 책을 펴 놓고 있으면, 마치 할 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일까 봐 책을 읽지도 못하고 네이버의 기사를 보고 또 봤던 날이 많았다. 책 펴 놓고 읽는 아르바이트생이 부럽기도 하고 한편으로 다른 부서에서 우리 부서에 일이 없다고 생각할까 봐 '얘들아 책을 너무 많이 읽지는 마련'이라는 부탁의 말까지 하지 않았던가.
현대 직장인에게 언제부터 자리를 지키는 것이 일을 한다는 의미가 된 것일까? 어떤 합리화를 해 보려고 해도 부족하다.
나는 정말 내 직장생활의 모습을 작가가 본듯해서 깜짝 놀랐다.
경비원 동료들의 전 직장과 연령과 인종은 다양했다.
경비원 일을 하찮게 여겼던 내가 부끄러웠다. 직업인들에 대해서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그들은 나보다 생각이 뚜렷하고 논리적이며 자신만의 일의 법칙이 있다.
요즘의 나는 갈대 같이 말 한마디에 흔들리고, 기존의 나의 일의 법칙이 어떤 것이었는지 법칙이라는 것을 만들며 일을 했었던가 되돌아보았다. 그런 것은 없었던 것 같다.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윗사람이 바뀌면 그의 입맛에 맞게 바꾸는 것이 법칙이랄까?
내가 오랫동안 다녔던 회사는 관료적이어서 보수적이었고, 그것이 싫었던 나였지만 십여 년의 시간이 흐른 뒤 나조차 관료적으로 바뀌었다.
지금 나에게서 이것을 털어내는데 꽤 시간이 걸리는 것 같다.
너무 힘이 없을 때, 어떤 길을 가야 할지 모를 때는
그저 오늘 하루 주어진 단순한 일들을 하며 사람들을 보는 게 그 순간을 버티는 힘이 된다.
작가가 하루종일 서 있으며 관람객들을 지켜보는 일을 하며 그의 슬픔을 조금씩 털어내며 일상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말이다.
뭔가 대단한 일이 생각이 안 날 때는 오늘 해야 할 작은 일을 하나 마무리하자.
미루지 말고, 할 수 있는 일. 쌓이고 쌓이면 내가 조금은 단단해지는 느낌이다.
이 내용은 미켈란젤로의 특별전을 하며 작가가 이야기 한 내용과 연결된다.
이탈리아에 가서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본 적 있는가?
그의 조각을 보면 이것이 사람이 만든 것인지 신이 만든 것인지 혼란스럽다.
심지어 그의 다비드 상을 봤을 때 나는 충격받았다.
인간의 신체를 가장 아름답게 돌에서 끄집어냈다.
그는 천재가 맞다. 그러나 괴로운 천재.
매일매일 똑같은 작업을 했고, 일에 대한 부담감으로 일을 회피했고, 경제적으로 항상 쪼들렸고, 추기경과 대부호들 앞에서 '을'의 입장으로 그들의 요구사항을 맞추기에 바빴다.
이건 우리랑 똑같은 모습이네. 위로가 많이 된다.
그의 성실함이 불멸의 작품을 나았다. 천재적 재능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 아니지만, 나의 성실함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다.
결국 인생의 품격은 나에게 달렸구나.
작가가 계속 미술관 경비원으로 머물렀다면, 이 책의 매력적 조금은 떨어졌을지도 모르겠다.
그가 슬픔을 딛고, 메트로미술관과 사람들로부터 치유를 받고 다시 나아가기로 결정한 부분이 도전이 되고, 작가가 그 경험을 쌓고 다음 작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게 된다.
역시 이동진 님의 추천을 믿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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